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

우국 충정과 청렴으로 살아 온 구종직 이야기 본문

갈매기의 여행. 맛집

우국 충정과 청렴으로 살아 온 구종직 이야기

인천 갈매기 2026. 5. 1. 15:26


■ 우국 충정과 청렴으로 살아 온 구종직 이야기

*공평 .무사와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
조선 국초에 구종직이란 신하가 있었다.

이분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구종직이 과거에 급제하여 교서관 9품 정자를 시작으로 벼슬 살이를 하였다

과거급제 하여 4년이 되던 해에 중앙조정의 내직에서 외직으로 처음 나간곳이 영동 현감 (정6품직)이었다.

구종직은 고을의 정사를 잘 다스리고
백성들의 송사 訟事를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하여 매양 고을 원들의 치적을 평가할때마다 최우등을 하였다.

2. 구종직이 내직으로 들어 왔다가  병자년(세조2년1456년)가을에
낙안군사로 부임하였다.

낙안 고을의 풍속이 투박하고 백성이 완악하여 전임군수들이 연속하여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났으니 모두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이라 중앙조정에 까지 알려져 그곳으로 부임하기를 꺼려 하였으나, 구종직이 부임하여 그 고을 백성을 다스림에 청렴하고 공평하며
너그러우며 간솔하니 아전이 두려워 하고 백성이 따르고 완악할 자 스스로 화하여 따르니 고을을 다스린 공적이
일도 一道에 으뜸이 되었더라.

이는 낙안 고을 백성들이 인심이 사납고 투박하여 중앙에서 내려 온 고을원인 군사 의 말에 복종하지 않다가 구종직이 고을원으로 와서 생활이 청렴결백하고 정사에 공평무사함을 알고 백성이 스스로 따랐다.

낙안은 전라도 땅으로 예로 부터 왜구와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낙안읍성이 축조되었고 남해와 접해  있어 진 鎭이 설치되었다.

당시에 낙안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외방으로 토질이 척박하고 살기가 어려운데 중앙에서 나온 경관 京官이 지방군수로 나와 지방의 실정을 모르고 고을 백성들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해산물을  과도하게 거두어 들이므로 백성들은 이를 따르지 않고 불신하여 고을 원의치세에 따르지 않았으며
고을 원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주 바뀌었다.

구종직이 부임하여 공평무사하게
고을 정사를 다스리니 새로 부임한 군사에  따르고 공의 치세에 탄복하여 스스로 혐조하고 화락하여 낙안 고을이 화평한 고을이 되었다.

공이 다스리는 동안 낙안 고을이 전라도에서 최고 으뜸이 되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