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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운포)서당 서천 향토 유산 지정을 축하하며...!

인천 갈매기 2025. 12. 13. 13:51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 302번지 소재 옛 이름 "운포당" 이란 서당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서천군의 유형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

지정 사유는 다음과 같다.

1942년에 촬영한 국어 간습회 기념사진

향토 문화재 지정 수목

서천 한실 운포당 서당
서천 향토 문화재 지정을
축하 하면서

서천(서림)으로
세거지를 옮겨 온 맹전공 진사공이야기


맹전공은 조선 국초에 세종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임금을 보필하면서 여러 벼슬을 거쳐 성종조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겸판중추부사 경연지사를 지낸 儒學의 대학자인 안장공
구종직의 증손이요  조부는 안장공의 장자인 "통정대부 예문과 직제학"에 오른 달손(達孫)공이요

부친은 달손공의 넷째 아들로 헌릉 참봉을 지낸 옥경공으로 당시 혁혁한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났다.

맹전공의 일가는 조상대대로 개경 한양 시흥일원에서 살아 왔다
조선개국 무렵에는 경기도 시흥 과천 인주일대에서 세거하였다.

이는 안장공일가의 묘소가 시흥 무지동 부흥산근처에 있고

치곤공 묘역이 광명시 가학도에
있는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한양 근처인 시흥일원에 걸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맹전공의 시조는 중국 당나라에서  왜국으로 사신으로 가다가 동해 바다에서 표류하여
당시 신라 울진 구미포에 표착하여  한국 평해구씨의 시조가 되었다.

육백년 세계가 단절되었다가
1세조 선혁공이 고려말에 도원수
이방실 장군과 같이 개경과 경상도 복주(안동)까지침략해 온 중국의 홍건적을 크게 물리쳤다(공민왕11년  ) 이 공적으로 선혁공은 정순대부 민부전서에 오른다.

2세조 천우공은
젊을 때부터 관직이 상호군을 거쳐 판도판서 (호조판서)에 오른다 이분이 평해구씨 기틀을
마련한다.

아들4형제를 둔다 (춘호 춘경  춘서 춘보) 춘호공은 고려말에 통헌대부(정3품)판사제시사를
지내셨고 춘경 춘서  춘보공은
조선초에 낭장 판사 낭장 등
하위직 벼슬을 지냈다.

조선개국후 태종 세종 문종조에
춘보공의  아드님이신 차숭공이 영해 부사 예빈시사( 정3품 )를 지냈고 그 아들 3형제가 모두 벼슬길에 올랐다.

첫째 아드님 이신 치동공은 이시애난때 종사관으로
난을 진압하다 전사하였다.

둘째 치곤공은 대과급제로 벼슬길에  올라 사헌 대사헌 강원 관찰사를 지냈다  셋째 아드님 치강공이 단종원년 과거급제하여 사헌부 집의를 지내고 일찍 돌아가 사후에 이조 참의를 추증된다.

안장공 종직공의 부친인 양선공이
풍저창 부사로 있으면서 후일 경학의 대가로 당시 사대부 선비들로 부터 사유師儒로
존경받는  종직공이 탄생한다.

종직공은 대여섯 살때 부터머리가 영특하여
부친이신 양선공이 "이 아이는  우리 문중을 크게
빛낼 것이라 하며 자손교육에
온힘을 쏟으셨다

종직공은 사서삼경 경학에 매진하고 유 불 선( 儒佛仙 )에 통달하였으나 과거급제가 늦어
사십이 되어서야 입격하였다.

좀 더 일찍이 합격할 수도
있었으나 부친 양선공의 삼년상을 치루면서 늦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야사에 나오는 바와 같이 말단 교서관정자정구품직에 있을 때 경회루를 월담하여 경회루
야경을 감상하다가 마침 경회루  야경을 보러 나오신 상감( 세종대왕)과 조우하여
상감앞에서 경학 춘추 한질을 외어
상감의 인정을 받아 정9품교서관 정자직에서 종5품인 부교리를 제수 받았다.

그 후 벼슬이 승승장구 하여
성종조에는 "숭정대부  좌찬성"에 이르렀다.

조부 달손공은 학문을 하는 청요직의 학자신하로 예문관 직제학을 지내셨다.

부친은 옥경공으로 헌릉 참봉을 지내셨다.

이런 혁혁 赫赫한 집안에서  태어난 맹전공은 어려서 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입신 출세의 길인 과거에
응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산조때 일어난
*무오사화 *갑자 사화로 많은 사대부들이 죽임을 다하는 걸 보고서 과거를 단념하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맹전공의 조부 달손공과 종조부 숙손공이 조정에 신하로 있을 때인 성종조의 태평성대시대가 가고 연산조가
옥좌에 오르자 생모인 윤비 문제와
사림파와 훈구파의 갈등으로 큰사화가 일어나  많은 신진 사림파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다.

우리 평해구씨와 유자광 임사홍과의 악연을 알아 보자
성종조때 부제학(정3품)으로 있던 임사홍이 모함한 일이 있었다.

그내용은 맹전공의  조부 달손공이 예문관 수찬(정 6품 )으로 있을 때 교리 최한정 부교리 유자한을
모함하여 쫒아내어 활발한 강론과 직언을 할 수 없도록 한 사건이 있었지만 성종이 젊은 신진 사류인 구달손 최한정 유자한을 두둔한 일이 있어 임사홍과 관계가 불편한
사건이 있었다.

또한 성종조 때 맹전공의 종조부
숙손공이 재상자리에 있는 유자광을 장악원의 장으로 겸임 임명하려고 할때 사헌부 집의로
있던 구숙손이 "자광은 임사홍과 짜고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3년에 한번씩 가도록 되어 있는 근친을 1년에도 두번씩 가는 등 국법을 어기므로 이런사람을
이런자리에 가도록 하는 것은 불편하다"하고 직언한 일이 있다.

이런일 들이 있어 맹전공의 조부 달손공과 종조부 숙손공이 간신 유자광 임사홍과 불편한 일이 있었는데  연산조 때 득세하여 무소불위의 권좌에 있었던 이들이 언제 어떻게 위해를 가할지 모를 근심 걱정때문에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정든 고향 시흥일원에서 조상의묘소가 묻힌 세거지를 떠날 처지에 놓여 불안한 삶을 살아 갔으리라.

그래서 가솔들을 이끌고 당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두메산골인 경상도 영양 상주 충청도 서천땅으로 세거지를 옮겼다.

맹전공은 처가가 있는 서천으로 내려와 고을의 원님이 계신 관가에서 멀리 떨어진 심산 유곡으로 들어가 운둔하여 살았다

그 후에  서천 땅으로 숨어 들어와 살면서 과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를일 이다.

*참고로 무오사화와 갑자 사화를 알아 본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에 일어난
사관 김일손이 그의 스승 김종직의 *조의 제문을 사초에 올린 것을 유자광 이극돈이 연산군에 알려
많은 사림파 인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조의제문내용은 중국 한나라때 이야기를 빗대어 세조( 수양대군)가 조카인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사초에 올린 글 세조는 연산군의 조부이다.

갑자사화 연산조 10년에 연산조  생모 윤비폐비와 사약을 받은 사건과 연루된 사림파 훈구파
가릴것 없이 많은 사대부들이
피해를 입은 사화 이때도 임사홍이 연산군을 부추기다.

맹전공 서천땅인 심산유곡 한실을 삶의 터전으로 삼다 농사를 천하지본으로 서천에 입향한 맹전공은 연산조시대에는
벼슬에 뜻이 없어 백두거사로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중종반정으로연산군이 쫏겨난 후에야 벼슬자리에는 나가지않고 양반의 지위만
보전하는 초시인 진사과에 응시하여 입격한다.

맹전공이 처가를 의지하여 서천으로 입향하여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당시 서천에서 가장 한적한 심산유곡 인 산골 "한실"(은곡)이다.

한실은 그당시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이라 할 수있는 두메산골이지만 농사터전이 넓고 작은 개울이 흐르는 큰 골짜기에  아늑한 산자락에 살 터전으로  삼았던 곳으로 보인다

맹전공이 뿌리를
내린 이곳 한실은 순수한  한글 지명이며 한자로는 큰골짜기란 뜻을 가진 대곡大谷이라 부른다
천방산 자락의 퇴메( 태봉산)아래에 있는 한실에 맹전공은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피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한실은 오랜 옛날(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있고 산자 수명하여 아름다운 곳이며 곡식과 물이 풍족한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서천 입향조인 맹전공은 물설고
낮 설은 머나먼 타향이지만 자손이 먹을 거리 걱정 안하고  난리가 나도 근심걱정 안하고  잘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어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으신 것 같다.

우리 종친 일가님들 특히 서천에
뿌리를 둔 우리 평해 구씨
종친님들 꼭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으로 팔십삼세가 되는 늙은이가 乙巳年 세밑에 올리는 글이니 읽어 주시고
격려의 글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平海丘氏 26代孫   丘仲完 드림

운포서당  서천 유형 문화재 지정을 축하 하는 글 입니다.

1) 평해구씨 종직이야기 저자 구중완 전 서울종친 회장의 축하 글

정말 축하드립니다
우리 서천 평해 구씨 맹전 진사공이 오백여년전 서천 (서림)으로 내려와 삶의 기틀을 잡은곳이 물맑고 농사짓기 좋으면서 한적한 한실( 대곡 ) 골이었습니다.

여기서 후손들이 자손을 가르치고
번성하여 큰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19세손
경천( 擎天)공은 호를 운포라 하여 생전에 운포당이라는 서당을 열어
후손들을 가르치고 서천에서 유림후학들이 몰려와 유명한 서당이 되었습니다.

유고(遺稿 )7권을 남기시기 세상을 떠나섰습니다( 정조 계묘~갑인 )
그동안 서천 한실 중심으로 서천 향토 문화재로 올리기 위하여 애쓰셨는데 이번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평해 구씨 문중이 모두 축하해야 할입니다.

진사공이 서천땅으로 오셨고 서천 장손집안을 중심으로 세거해 온 한실(대곡)을 서천 평해 구씨의 마음의 고향으로 한실 마을전체를 서천군 향토 문화재로 지정 받는 것도 후손들이 추진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서천의 다른 성씨들로 부터 축하 받을일이라고 봅니다.

향토문화재 추진을 위하여 애쓰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서천 구창완님의 축하 글 입니다.

이번에 운포당 (대곡서당)이 서천군 향토유산으로 지정 고시 되었음은 우리 평해인들의 자부심을 찾아주는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 지정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기간 동안
몇 몇 사람이 힘을 쓴것이 아니라  많은 일가님들이 자료를 찾고 모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자료와 사료를 찾아내어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큰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일가님들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의병장 구암龜巖구병대秉大 선생 선양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은 보훈부에 자료를 제출하여 1차 회신을 받았으나 자료의 부족(?)으로  보류중에 있습니다.

평해인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 입니다.

자료를 찾아 주십시요.

서천의 터줏대감 성씨로 군림 하면서 선대 조상님들의 빛나는 업적이 분명코 있음에도 찾아 밝혀 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후손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는 있으나 내년을 기약하며 많은 일가님들께서  자료 발굴을 부탁 드립니다.

3) 구영옥 전 재경서찬군민회장의 축하의 글

譜學의 대가이신 仲完 형님께서"경학에 뛰어난 안장공 丘從直 이야기"를 써내셔서 宗人들께 종직조의 훌륭하심을 일깨워 주심으로 희성
같으나 원 뿌리는 그렇지 않음의 자긍심을 높 혀주신후 그책을 소유
하고 있지 않은 후손 들에게 이 氏族단톡방을 통해 다시금 강론함은 참으로 귀한 기회일듯합니다.

健康이 쇄약해지면 톡 강론도 할수 없음으로 아직 기력이 남아계실
때 톡방 교육으로 씨족의 역사를 알려주
심은 좋은 기회일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