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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구씨 - 달손공 이야기 2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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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구씨 - 달손공 이야기 2편

인천 갈매기 2026. 4. 28. 08:29


■ 달손공 이야기 2편 입니다.

《이 글은 전 서울종친회장을 지낸 중완 원로께서 카톡 쓰신 글로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을것 같아 이 곳에 옮긴 글 입니다.》

참고로 그당시 우리달손공과
같이 과거에 급제한 분들의 면면을 적어본다.

정괄 동래인 세조때 공신인 정창손의 아들로서
강직하기로 유명하고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다.

창녕인 성진 예문관 직제학을 지냈다.

박효원 비안인 중국 명나라에 가서 문名을  날리다 벼슬은 대사간에 이르다.

원맹강 원주인
생육신 元昊의 손자 벼슬은 감찰이다.

박숙창 음성인벼슬은 사헌부 지평을 지내다 조선태조때 함흥차사로 유명한 朴淳의 손자이기도 하다.

영월인 辛仲据신중거 벼슬이 사인舍人이었다.
풍류를 즐기고 술을 좋아했다.

복승정卜承貞 면천인
지평거쳐 관찰사를 지내다.

정충원 온양인 관직은 부사를지냈다.

우리 달손공과 등과하신 몇분을
올려 보았다.

달손공은
마지막 관직(벼슬)으로
예문관 직제학을 하신것으로 나온다.

예문관 직제학은
정3품 통정대부 품계의 관직으로
경연에 참여하는 신하들 중 실질적으로 경연을 준비하고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자리이다.

그래서 직제학 直提學이 되면
옥당玉堂이라 하여 文士(學者)로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달손공은 직제학이면서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직제학 달손공은 그의 부친 안장공 구종직공이 세조임금으로부터 녹피 鹿皮 담요를 하사받으셨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이조 실록 )
부친과 같이 성종( 조선 9대왕)으로부터 임금께서 특별히 내리는 녹피 鹿皮를 하사
下賜받으셨다는 이야기가 실록實錄에 보인다.

직제학 달손공은
시독관 侍讀官시강관 侍講官도 겸하셔서 왕과 신하들이 모인 경연청에서 경서와 사서史書를 강론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또한 성종조9대
때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과
경서 經書등 서적을 편찬編纂하셨다는 기록이 사기史記(이조실록 )에 전해 온다.

직제학을 지내신
달손공에 대한  여러가지 일화를 적어본다.

■ 일화 1
성종6년에 시독관 부수찬(정 6품)
계실 때 경연에서 중국  한나라때 고사 古史를 예로 들면서 선왕이신 예종( 8대)의 위패를 종묘에 모셔 주상인 성종(9대)이 그 법통을 이어가고 사친私親인 덕종( 도원군으로 성종의 아버지)은 별묘에 그대로 모시고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를 하도록 임금(성종)에게 진언하여 이렇게
함으로써 대통( 왕위를 이어감)이 둘이 되는 혐의 嫌疑스런 실수가 없고 낳아 준  아버지(사친)인 덕종(도원군)에 대하여도 망극한
은혜를 다하여 공의 公義와 인정人情을 둘 다 온전하게 할 수 있다것을 진언한 기록이 전해 온다.

■ 일화 2
달손공은 전국 지방에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는 방법을
임금님께 진언한 기록이  보인다.

성종8년에 상감께서
"비록 착한사람이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임금인 내가 어떻게 알아서 임용하겠는가?"
하니 시강관 구달손이 아뢰기를
"여러고을인 군 郡에 하교하셔서
일민 逸民(학문과 덕행이 뛰어나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않은 평민)을 천거하게 하면 유능한 인재를 얻을 수 있을것으로 압니다"하면서 인재 등용방법을
진언한 기록이 실록에 보인다.

■ 일화3
달손공이 예문관
수찬(정5품)으로 경연관으로 있을 때 임사홍 任士洪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