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정역을 지나며 — 서거정과 구종직의 이야기
사가정역을 지나며 — 서거정과 구종직의 이야기
지하철역 이름을 지나치다 보면, 우리 선조들의 이름이나 호(號)를 딴 곳들이 적지 않다. 서울 중랑구의 사가정역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가정(四佳亭)은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자 문신인 서거정의 호이다.
서거정은 대구 서씨 출신으로, 세종 26년(1444) 갑자시에 대과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세종·문종·단종·세조· 예종·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조선 초기 문치를 이끈 대표적 학자로 성장 하였다.
그는 예조참판, 이조·형조판서 등을 거쳐 양관대제학과 좌찬성에까지 올랐다.
또한 과거 급제 이후에도 등준시와 발영시에 다시 급제하며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의 성품은 너그럽고 인자하여 남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경학뿐 아니라 역사·의술·천문·음양· 지리·복서 등 다양한 분야에 능통했으며, 《동국통감》, 《동문선》, 《경국대전》, 《삼국사절요》 등의 편찬에도 참여 하였다. 개인 문집으로는 《사가문집》, 《역대연표》,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 《동인시화》 등이 전해진다.
그는 조선 초기 관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훈구 세력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세종 2년(1420)에 태어나 성종 19년(1488)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집안은 고려 말부터 이어진 명문가였으며, 외조부는 양촌 권근, 자형(姊兄)은 최항이었다.
특히 그는 수양대군 시절부터 세조와 가까운 관계였기에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 편에 섰던 것으로 보인다.
■ 여담 1 — 김시습과 서거정
서거정과 생육신으로 유명한 김시습 사이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서거정이 궁궐로 가던 길에 김시습이 길을 막아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강중(서거정의 자), 높은 벼슬에 올라 수양 편에서 잘 지내는가?”
이를 본 하인들이 무례하다며 김시습을 끌어내리려 하자, 서거정은 오히려 이를 만류하며 말했다.
“미친 사람과 다투면 후세 사람들이 우리를 나무랄 것이다.”
서거정은 옛 벗 김시습을 알아보고 그를 다치지 않게 하였고, 자신 또한 불필요한 화를 피했다는 이야기가 야사로 전해진다.
김시습(1434~1498)은 서거정보다 열네 살가량 어렸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지기지우로 지냈다고 한다.
■ 여담 2 — 구종직과 서거정
세종 26년 갑자시에 서거정과 함께 대과 문과에 급제한 인물 가운데 구종직이 있다.
구종직(1404~1477)은 평해구씨 출신으로, 비교적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명문가 출신의 서거정과는 배경이 크게 달랐으나, 두 사람 모두 천문·음양·지리·복서 등에 능통한 학자였으며 학문적 교유를 이어갔다.
구종직 또한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관직에 올랐다. 나이 차이를 넘어 서로를 아끼는 지인으로 지냈으며, 서거정은 구종직이 세상을 떠나자 척고시(斥告詩)를 지어 애도하였다.
서거정은 시에서 구종직의 인품과 삶을 다음과 같이 기렸다.
체구가 늠름하고 풍채가 뛰어났으며,
말씨가 온화하고 인품이 총명하였고,
정주학을 계승하여 학문을 널리 펼쳤으며, 높은 벼슬에 올라 세 조정을 섬겼고, 장수와 자손의 번영까지 갖춘 복된 삶을 살았다고 찬양하였다.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당시 서거정이 구종직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사가정역을 지나며 떠올려 본 서거정의 삶은 단순한 한 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 초기 정치와 학문, 그리고 인간관계 의 복합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역사 속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