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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직 이야기 ...성화14년 성종 9년 춘2월 문인 홍문관 수찬 겸 지제교 김맹근 근찬

인천 갈매기 2026. 5. 6. 16:15

구종직은 세종 26년 1444년  갑자시에 그의 나이 41세란 늦은 나이에 등과하여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조까지
여섯 임금을 모시면서 국사의 막중한 책임과 경학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간소하고 욕심이 없으며 항상 집안을 잘 다스려 평생을 청렴하고 결백한 생활을 하였다.

구종직이 세상을 떠난후 성종 14년 무술년 2월에 홍문관 교리 김맹성이 근찬한 행장을 보면 구종직의 청렴 결백한 생활을 알 수 있다.

행장 내용을  보면 구종직은 순박하고 솔직 담백하며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고 권문세가들을 멀리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집안에 아녀자와 종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자손을 가르치되 언제나 임금에 충성하고 효도와 형제간에 우애하고  3세를
보필하되 집에 재산이 없으며 벼슬이 일품에 올라 5공(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좌찬성 우찬성)에  올랐으나 의복이
비단옷을거듭하지 않았으니 당시 사회의 상 하  모든 사람들이  청렴하고 결백하다  칭송이 자자 하였다.

성종이 즉위하실때 구종직은 잠저潛
邸에 있었다 상감 성종은 구종직이 학문에 정통하고 충성심이 지극함을 아시고 구종직에게 지경연 춘추관사를 겸임하게 하시고 신묘년에는 좌리 훈 원종공신을 내리시고 계사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니 구종직이 늙어 모든 관직에서 물러 나겠다는 뜻을 상감 성종께 아뢰었으나 상감 성종이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구종직이 갑오년에 병을 얻어  누워 있으니 상감 성종은  여러번 중사를 보내어 위문하고 겸하여  진선을 내리셨다.

정유년 성종 8년(1477년)에  10월 3일( 정유)에 자손을 훈계하는 시를 지어 남기고 세상을 뜨니 이때가 향년 칠십사세라 이때에 상감 성종이  동교에서 강무하시다가 구종직의 부음소식을 듣고 놀라 슬퍼하며 사냥을 파하고 환궁하여 곡포로 후히 부의 하시고 예조정랑 유조(兪造)를 명하여 빈소에 치제하고 12월 갑인에 관비로 국가에서 장례비 일절을 부담 하도록 명하여 장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구종직의  청렴과 지조에 대하여  사백여년이 지난 조선말 고종때인 후세에 통정대부 성균관 대사성 시강원 원임 사서인 김복한이 근장한 행장을 소개해 본다.

"구종직 공은 성품이 진솔하고  곧으며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과 재물에 욕심이 없으며  권문세가에 아부하지 않고
나라( 임금)에서 주는 녹봉으로 겨우 마련한 집에서 살았다 .

재물을 늘리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집안 아녀자들을 잘다스려 사치를 멀리 하도록 하였고 자손을 기르고 가르치매
항상 충효를 으뜸으로 여겨 후세에 모범이 되었다.

조정에 출사하여 수십년에 일품에
오르고 삼세( 세종 세조 성종 )를 보필한 명신이지만 나라에서 준 녹봉으로 겨우 마련한 집에서 살았고  재산을 늘리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집안의 아녀자를 잘 다스려 사치를 멀리 하였으며  자손을 가르지는데 오로지 우국충정과
임금을 위한 일편 단심으로 충성으로 일관 하였으니 청렴한 신하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소한 옷차림과 옛것을 고치지 않고 살아 가셨으니 세상에서 모두 이르기를 청렴하고  
결백하다 칭송하였다 하더라 구종직은 배위를 온양 정씨 수의 따님을 맞이 하였다.

5남을 두었으니 장남 달손은 성화성종 을유년에 문과에 등과하 예문관 직제학이 되고 둘째  숙손은 갑오년에 문과에 등과하여 이조정랑 집의가 되었으며 다음 달동은 정유년에
무과에 등과하여 건공장군에 오르고 다음 달동은 갑오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직장이 되고 말재 숙남은 생원으로 성환 찰방이라 자손이 번창하고 복록이 떨어지지 않으니
이에 공의 여경을  가히 보겠노라
삼가 우와 같이 찬하여 태상에
채택함을 바랍니다.

- 성화14년 성종 9년 춘2월 문인
홍문관 수찬 겸 지제교 김맹근 근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