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가 분명한 간관諫官
■ 사리가 분명한 간관諫官
단종 3년 (을해)에 구종직이 사간원 좌헌납 정5품 으로 있으면서 당시 어린 상감인 단종께 좌사간 신전과 우헌납 서경과 함께 임금이 지켜야 할 12가지 덕목을 상소로 올린다.
내용을 적어 보면
1. 경연에 나와 성학聖學을 열심히 하시고
2. 정부 6조가 올리는 의견을 친히 열람 하시라.
3. 환관(내시 )에게 건모를 착용하게 하시라.
4. 자품(품계)을 건너 뛰어 관직을 높여 제수하심을 자제하시어 관의 질서를 잡으시라.
5.언로를 넓히시라 신하들의 승진등은 특별히 직접 인사에 관한것은 임금이
챙기시라.
6 내관(내시)이 인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시라.
등을 상소한 기록( 실록 )이 보인다.
당시의 정치상황( 궁궐의 상황)을 보며는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오르신지 얼마 않되었고 세종임금( 단종의 조부 )과 문종 ( 단종의 부친 )이 어린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어린 임금을 잘 보필라는 당부를 받으신 선대왕 (세종 문종)의 고명대신이 있었다.
이 분들이 유명한 영의정 황보인 호랑이 대감으로 불리는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이다.
이때는 3정승이 조정의 모든 인사권을 좌지 우지 하였다.
3정승이 주요 천거 인사를 임금께 올리는데 노란색 으로 점을 찍어서 올리면 임금은 형식적으로 성람(聖覽) 하고서 3정승이 올린 안( 황표가 찍힌 자)을 그대로 임명한다.
왕실 종친어른도 3정승의 허락없이는
상감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종친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나중에
수양대군쪽에서 계유 정난을 일으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 등 많은 인사를 처단하고 정권을 잡는다.
한명회 권람 홍윤성 양정등이 수양 대군편에 서서 황보인 영의정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등 많은 신하들을 살해하고 귀양 보내고 정권을 잡는다.
그렇지만 사간원 좌헌납 구종직 등 諫官들은 이 계유정난과는 아무런 관련히 없이 어린 임금 단종에게 임금으로 할 도리를 해야 할것을 상소한것이다.
세조즉위 초에 억울한 옥사가
있었는데 조정의 의론이 분분하여
결단을 못하는지라 좌헌납 구종직이
입대하여 사리정연하게 상감께 말씀 드리니 상감(세조)는 구종직의 상소 이야기가 맞는 지라 상감은 세자 에게 이르기를 "세자는 구종직의 사람 됨을 아는냐?
참으로 어진 선비이니라" 하고 칭찬한다.
여기서 억울한 옥사란 민ㅇ이 그의 친구 이ㅇ산을 살해한 사건인데 세조는 가해자 민ㅇ발이 세조가 왕위에 오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민ㅇ발을 구해 주려고 한다 그래서 세조는 구종직이 민ㅇ발을 벌하여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 한다. 더욱이 술자리에도" 상감 민ㅇ발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주장 하니 옆에 승지가 구종직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억지로 집으로 돌려 보낸다.
이튼날 구종직은 "신 구종직은 간밤 어전에서 술이 만취하여 큰 죄를 저질 렀습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