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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구씨- 달손공 이야기 3편

인천 갈매기 2026. 4. 28. 08:35


■ 달손공 이야기 3편 입니다.

《이 글은 전 서울종친회장을 지낸 중완 원로께서 카톡 쓰신 글로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을것 같아 이 곳에 옮긴 글 입니다.》

달손공이 수찬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구달손과 관련하여 성종6년에 임금과 신하가 학문을 논하고 국사를 논하는 경연자리에서
당시 부제학(정3 품)인 임사홍任士洪이

"교리 최한정
부교리 유자한  수찬 구달손은 학문이 없어 예문관직에 맞지 않는걸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상감께 아뢴 바가 있어
교리 최한정 등은"신등은
사람들의 헐 뜯는 바가 되어
이자리에 있을 수 없으므로 사직을 청합니다"하였다.

이에 상감은 좌승지 류권에 이르기를 전에 임사홍이 예문관에 재직하고 있는 자로 학문이 없는 자가 있다기에 그 명단을  가져오게 한것은 그들을 도태시키려 한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  오늘낮에 최한정 유자한 구달손 등이 사직할 것을 청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실력은 있으나, 덕행이  없으면 더 볼것이 없느니라" 하니 승지 유권이 말하기를 "경연에서  시강하는 자는 그 글 재주뿐만 아니라 마땅히  그 행실도  보아야  합니다 하면서
최한정은 노성하고 유재한은 장원급제하였고 구달손은 그의 부친이   구종직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분의 아들이며 모두 경서를 익히 읽은 사람들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이 나의 뜻이 아님을 타일러라"
하면서 "그대들은 모두 조정에서  뽑은 인재이니 그자리에 있으라"
하셨다.

당시 임사홍은
신진사류의 발랄한 재주를 시기하여
예문관 강론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고

임금께 활발하고 자유로운 강론과 계를 막으려고 쫒아 내려고
한 것이다.

달손 공의 둘째 아우 弟는 숙손夙孫공으로  성종5년 갑오시에 차석으로 등과하여 이조정랑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지평 집의( 종3품 )를 지내셨다

셋째 아우 달문達文공은
무과 급제하여 종3품 건공장군으로
내금위에서 계셨다.

네째 아우 달동 達童공은 진사과에 합격하여 정7품 직장 直長을 지내셨다.

다섯째 아우
숙남 夙男공은 성환 도찰방( 정6품 )을 지내셨다
묘소는 "시흥시 무지동 "부흥산 기슭
부친 안장공 종직조 묘역에 있다.

묘비가 조선조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매장문화재급 화강암 흰색 비석이다.

여동생 妹가 있어 麗州 (여주) 이씨로 출가하였다.

達孫공의 배위(부인)는 상산商山 金氏로 그의 부친은 참판( 종2품  )을 지낸 분이다.

상산 김씨의 묘소는 광명시 무지동 부흥산 기슭 안장공 종직조 묘역에
있다.

달손공의 묘소는 실전되었다.

위패는 서천군 문산면 지원리
명곡에 있는 안장공 종직조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청덕사 영모전에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