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달손공 이야기 1편
■ 역사 이야기...달손공 1편 입니다.
전 서울종친회장을 역임하신 구중완 원로께서 쓰신 글을 정리 해 봅니다.
종친들의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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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손공 이야기
조선초 경학의 대가 구종직 선생의 큰 아드님이신 달손공은 세조 10년 을유 춘시
대과( 문과 )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 종6품)수찬( 정6품 ) 시독관 시강관
응교(정5품)를 거쳐 예문관 직제학(정3품)에 올라 경연에
참여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가 조선조
문사文士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셨다.
직제학 달손 공과 같이 과거에 급제한 분은
을과3인 병과7인. 정과 23인 도합 33인이었다.
갑과 급제자는 내지 않고 을과3인이 최고 우수자로 뽑힌 것이다
그래서 달손공은 청요직인 부수찬 수찬 시독관 시강관 응교정5품을 거쳐 정3품 직제학 직위에 이른다
청요직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집현전이나 홍문관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직을 이르는 말이다. 집현전은 세종조때 세워진 학문연구 기관으로 많은 賢士들이 모인 학문연구 기관이다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하위지 류성원 최항 이개 김질 최만리등이 집현전 출신이다 그중에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는 단종복위에 관여해서 사육신이 되어
끝가지 단종을 모신 신하들이고
신숙주 최항 김질 등은 나중에 왕위에 오른 세조를 섬긴다
그후
세종때 집현전이 없어지고
성종때 홍문관 弘文館으로 개편 되었다
홍문관은 궁궐안에 있다 하여 玉堂이라 하였다고 한다
달손공은 과거에 우수한 성적(을과3인 )으로
등과하여 당시 관료사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홍문관 예문관에서 벼슬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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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손공은 조선 초기, 학문과 문벌의 정점에 서셨던 달손공(구종직 선생의 장남)의 생애와 업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사대부들이 꿈꾸던 '청요직'을 거쳐 고위 관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1. 달손공 인물 개요
가문: 경학의 대가 구종직 선생의 장남.
과거 급제: 세조 10년(1465년) 을유 춘시 문과 급제.
당시 총 33명의 급제자 중 **을과 3인(최우수자)**으로 선발된 엘리트였습니다.
주요 평가: 조선조 문사(文士)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던 인물로 기록됩니다.
2. 관직 경로 (청요직 엘리트 코스)
달손공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요직인 '청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진하였습니다.

3. 역사적 배경 및 용어 정리
● 청요직(淸要職)
학문적 소양과 도덕성을 겸비한 관리들이 임명되는 직책입니다. 주로 집현전이나 홍문관에서 근무하며 국가 정책을 연구하고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집현전 vs 홍문관
집현전 (세종 대): 학문 연구 기관의 시초입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과 신숙주, 최항 등 당대 최고의 현사들이 모였던 곳입니다.
(이후 단종 복위 사건 등을 거치며 세조 대에 폐지됨)
홍문관 (성종 대): 집현전의 기능을 계승하여 재건된 기관입니다. 궁궐 안에 위치하여 옥당(玉堂)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학문과 정치를 연결하는 조선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요약 하자면,
달손공은 과거 시험에서 최상위권 성적으로 급제하여, 조선 초기 학문적 자부심이 가장 강했던 "홍문관(옥당)"과 예문관을 중심으로 탄탄한 관직 생활을 하셨던 분입니다. 특히 집현전의 정신을 계승한 홍문관의 핵심 인물로서, 당대 지식인 관료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는 위치에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까지 달손공에 대한 역사 이야기 1편 이었습니다.-